2009년 03월 16일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다운로드의 세계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비디오를 빌려서 영화를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위이다. 그것은 영화를 감상한다거나 영화의 세계로 침잠해가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 나온, 혹은 유명한, 또는 이 정도는 봐줘야 술자리에서 이빨깔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체크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시간이 아무때나 자유롭다는 것은, 영화를 도무지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지금 안봐도 내일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는 종종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퇴근 길에 오늘 저녁에는 캔맥주 하나를 까놓고 영화나 한편 때려야지, 하며 지하철에서 내리더라도 막상 집에와서 밥먹고 발닦고 앉으면 축축 늘어져서 어차피 언제든 볼 수 있는 영화 오늘 보면 무슨 벼슬이 내리나, 하는 심정으로 그냥 널부러지게 되는 것이다. 설령 억지로라도 다운로드 받은 파일 중 어떤 걸 볼까 고민하다가 간신히 하나 골랐다 치더라도, 이 영화 첫부분이 재미없으면 여지없이, 나중에 봐야지하며 끄게 되거나, 야한 영화다 싶으면 중요부분만 발췌해서 보고 마무리 짓는 행위들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디오는 분명 다른 맛이 있었다. 퇴근길에 영화를 봐야지 라고 결심하며 비디오를 하나 빌려 들고오게 되면, 반납일이라는 압박감이, 게다가 빨리감기, 되감기가 몹시 아날로그틱한 방식이므로 섣불리 돌렸다가 다시 되돌아오기 난감하므로, 재미가 없더라도 마지막 부분이 몹시 감동적일거야, 혹은 충격적인 반전을 기대하면서 어쨌거나 꾸역꾸역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10년 전에는 분명,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있었던 것 같다. 볼만한 영화와 시궁창 영화를 잘 구분해서 올해의 베스트, 워스트 10 정도는 쉽게 꼽았었는데, 다운로드 받기 시작하면서 영화란 늘 그저그런 것이 되버렸다.
극장에서
- 성윤석
뾰족구두 와이셔츠 밀치며
극장에 가면
우리 없는 세상은 어떨까 깜깜한
지층 한발 한발 밑을 요량하며
껌 씹으며 극장에 가면
밑바닥 꺼져
우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아팠다 잡음 내며 불 꺼지는
동시 개봉관에 가면
우리 사는 일도 번쩍번쩍 들어
올려질 것 같아, 일생의 북소리
바이올린 소리 탬버린이 흔들어대는
순간에 가면
사람들은 사랑과 정열만으로도
떠날 수 있고 누군가 복수를
꿈꾸는, 바람 불고 비 내리는
거리에 가면
나타났다 없어지는 죽음에
가면 우리 삶도 영화가
될까 새로운 필름을 예고하는
나날의 극장에 가면
성윤석, <극장에 너무 많은 우리 동네>, 문학과지성사, 1996, 12~13p
극장은 칙칙해야 아무래도 스크린으로 침잠해가는 그 몰입도의 정도가 굉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매분매초 뭔가를 생산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도시의 뒷골목. 거기에는 늘 때묻은 극장이 있었고, 생산성이 몹시 떨어지는 한 사내가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두운 건물로 빨려들어간다. 영사기 빛을 따라 먼지가 무성하게 부풀어오르는 극장 안. 푹 꺼져가는 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눕히면, 저 넓은 장막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므로 더욱 몰입되어지는 저 스크린의 빛. 생산성 떨어지는 우리같은 인간들이 사라진다. 도시의 뒷골목 마다 찢겨 흩날리는 신문들도 사라지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용자인것 마냥 고함을 치고 멱살을 잡아대는 의원 나리들도 사라지고, 이 극장을 나가면 한그릇 밥짓는 냄새를 따라 어디론가 배회해야만 하는 내일도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그 새로운 세상.
테네시 윌리암스의 <유리동물원>의 톰은 극장에 간다. 매일매일 극장에 간다.
들끓던 시절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극장에 간다. 고다르와 트뤼포도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봤겠지.
기형도는 그만 극장에서 죽고
그랬다. 영화는
그리고 극장에 하나도 없는 동네에 살던 나는,
내 방에 있던 14인치, 드르륵 돌리는 텔레비젼을 주워다가 2채널 비디오를 연결하여 비디오를 보았다.
한편에 1000원. 열편 빌리면 한편을 거져 빌려주던 동네 비디오가게에 들어가, 오늘 밤 품을 환타지를 고르는 것은, 차라리 쾌락이였다. 비디오를 옆구리에 끼고, 88라이트 한갑과 소주한병을 사서 덜렁덜렁 집으로 오는 길. 장농을 열면 우리가 몰랐던 나니아의 세계가 열리듯, 비디오를 재생하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열렸다.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1>
-성윤석
어둠 속에 들어앉아 지붕을 쓰고 있으면
내 봄을 보여주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네 소설 속의 소설 액자 속의 액자
사람 속의 사람
한 女子가 나와 몸을 비꼬네
여전히 性器는 잘려나가고
(참! 불필요하게도) 허벅지에서 가슴까지
안개가 뿌려지네
시야는 완전 zero
한 예쁜 청년이 벚꽃 아래에서
빙긋이 웃네
겨울 속의 봄 詩 속의 散文
나 속의 나 사이
쥐들이 지나가고
날마다 영화를 보러 가는, 내 얼굴을
이웃들은 대부분 보고야 말았다네
이 동네를 위해 내가 할 일이란
안개에 둘러싸인 화면들을 서둘러
없애는 일뿐, 그제야 막이 내리고
말면 나는 언제나 보지 않아도
될 것을, 그랬다네 언제나 후회 못 할 삶은
극장 벽면 귀퉁이에
서둘러 그려진 저 性器 속의 性器!
위의 책, 44~45p
어느덧 우리 동네에도 극장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에 극장이 많아졌는지, 극장이 많은 동네에 이사를 온건지, 하긴 10년이 지났으니 그간 어떻게 된건지 정리도 안되지만, 아무튼 극장은 많아졌다. 우주선을 타듯 신비로운 공간으로 꾸며놓은 깨끗하고 깔끔한 극장에서 한편의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을 보는 자세로 나는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며 쏟아내야 할 말들을 하나씩 생각해본다. 저 영화라는 현실을 하나씩 해석해보고 풀어헤쳐본다. 예전에 봤던 영화의 장면들과 겹쳐본다.
이제 영화도 낭만을 넘어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거나 찜질방에 가서 맥반석 계란을 까먹거나, 어떤걸 할까, 나는 아무래도 고민이 된다.
집 앞에 DVD 대여점이 생겼다. 개업기념으로 2만원을 내니 3만원으로 등록해준다. DVD 2편을 덜렁덜렁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10년만에 하드에 꾸역꾸역 다운받은 파일이 아닌, DVD 대여를 통해 영화를 보려니, 생각들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 by | 2009/03/16 23:36 | 詩를 읽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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