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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아, 속지말아라

서암스님 매일마다
"주인공아!" 큰소리로 부르더니
스스로 "네!" 하고 대답하고 "깨어있어라!" 하시더니
다시 또 큰소리로 "네!" 대답하고
"다른 사람에게 속지 말아라!" 하고는
또 다시 "네!"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더라.


뛰어난 문장가와 웅변가가 많아 뭘 먹으면 어찌 저렇게 생각이 차분하고 지식이 해박할까 싶다가도, 어찌어찌 듣다보면 자꾸 나에게 꿈에서 깨어라, 네가 하는 생각은 우매하니 이렇게 하여라, 저렇게 하여라, 그저 생각난대로 행동하지 말고 내 말 듣고 판단해라,하더라. 이 무슨 애국계몽운동 시절의 안창호 선생도 아니고 나도 어찌어찌 배울만큼 배우고 읽을만큼 읽었는데, 단지 천성이 다소 아둔하고 판단이 느려 남보다 더딘 맛이 있을 뿐인데, 세상 참, 가르쳐줄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선 하나로 갈라놓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하는 땅덩어리에 살면서 또 이런저런 선을 그어 이쪽과 저쪽의 서로 '틀림'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모습들을 매일 보고 산다. 옳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가 들여다봤더니 사료를 볼때 이러쿵 저러쿵, 몇년도 언제에는 객관적으로 이랬으니 틀린 말을 하는 너는 앞으로 절대 말하지 말 것, 네가 쓴 문장 중에 단어 하나 잘 못 썼으니 네 논리는 무효. 따위의 말들이다. 왜 사람들은 자꾸 계몽을 기획하려는 것일까. 내 눈에는 좌파니 우파니의 이분이 아니라 계몽을 기획하려는 자와 판타지를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뭐 과거부터 끝없이 존재하던 순간성과 영원성의 대립이나 고전과 낭만의 대립따위의 캐캐묵은 논쟁 거리가 아닐지 싶기도 하고.

나는 잘 모르겠다. 편이 갈린건지 안갈린건지도. 그러다보니 누가 옳은건지도. 서로 거짓이라고 말할때마다 진실은 대체 뭔지도. 판단하기 어렵다보니 생각도 없어진다. 그저 한켠에서 당황해하며 주문처럼 중얼거릴 뿐.
주인공아, 네, 깨어있어라, 네, 다른 사람에게 속지 말아라, 네.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하고 어떤 생각을 해야하는지 도무지 모를때, 그래서 마음이 마치 소를 잃어버린 목동처럼 되어버릴 때,

망망발초거추심(茫茫撥草去追尋)
수활산요로갱심(水闊山遙路更深)
역진신피무처멱(力盡神疲無處覓)
단문풍수만선음(但聞楓樹晩蟬吟)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힘 빠지고 피로해 소 찾을 길은 없는데,
오로지 저녁 나뭇가지 매미 울음만이 들리네.



이런 게송이 떠오르는건, 그래도 소 잃어버림에 대해 알아차렸다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소의 발자국을 찾으러 가야하는데, 나는 도무지 나에게,
주인공아! 라고 큰소리로 불러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은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을까.





by djccuri | 2008/12/29 15:06 | 생활의 순간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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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unhalee at 2009/01/12 10:40
요즘 너무 뜸하신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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