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리믹스
2008년 12월 24일 회사풍경
메리크리스마스, 라고 메신저가 종종 깜박거렸다.
꾸벅꾸벅 졸다가 아아, 축성탄하세요, 라고 답변 몇번.
빌딩전체가, 나처럼
꾸벅꾸벅 졸거나
무료하게 웹서핑을 하고 있거나
도서관마냥 책을 읽고 있거나
우리 회사는 숙박업도, IT업도, 교육업도 아닌데
다들 그러고 있다.
월급이 들어왔다. 회사에게 미안해본건 오늘이 처음.
미안하다.
꿈
조는게 이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기 시작했다.
점심 먹고 끄덕거리다가 꿈까지 꾼다.
나의 꿈이란 대개 이렇다.
대충 살고 있는데도
지쳐서 중간중간 졸다니
성공하긴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앞으로 10년을 죽을 힘을 다해 뭔가 하더라도
성공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고 생각하다가
나의 꿈은.
성공이 뭔지 모르겠지만
나의 진정한 꿈은
생각해보니 남산골 딸깍발이처럼 사는게 아니던가.
흥, 왜 돈따위를 벌고 있는거냔 말이다.
추억, 크리스마스 이브
졸려서 교보문고로 땡땡이 치러 갔다
수학책도 보고 불교경전도 보고
랜덤하우스에서 나왔다는 글쓰기 시리즈 책도 보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고
아가씨 짧은 치마에 검은 레깅스로 포장된 미끈한 다리도 보고
애인사이일까, 부녀사이일까, 사제관계일까, 직장동료일까, 그런 의심가는 커플도 보고
비니는 평범한데 머리가 커서 비니가 특별해 보이는 청년도 보고
그랬다, 내게 크리스마스란
혼자 종로에 나와 서점에서 아침부터 주구장창 노는 것
이십대의 크리스마스란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덜도 더도 말고 딱 10만원어치 책을 샀다.
(지금은 몇권 안될 수 있겠지만 예전에는 두 팔이 후덜덜 거리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커플들이 종로로 모여들기 시작할 즈음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캐롤을 틀어놓고 책을 읽으면 그뿐
2000년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성균관대 앞에 있었다
막 작업 들어간 아가씨와 함께 쏘다니고 있었다
손잡기도 뭐하고 팔장도 못낀채 서먹서먹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내가 참여하던 영화스터디에서 카페를 빌려 밤샘 영화 상영회를 하기로 했고
정말 보기 힘든 영화를 볼 수 있을 꺼야, 라는 식으로 작업을 걸어 간신히 꼬셔냈을 때,
그리고 시간이 좀 남아 성대앞에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었을 때,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맥주집 창문 밖이 크리스마스용 영화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누군가가 눈오는 기념이라며 술한잔씩을 전부 돌렸다
우리는 거짓말같은 풍경을 보면서 여전히 서먹해했다
그리고 술집을 나와 막 내린 눈길을 뽀드득거리며 밟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정확히 4년이 지난 2004년에
우린 결혼했다
이승환 1집, 크리스마스에는
와이프는 이승환의 빠순이다
TV에 이승환이라도 나오면 눈이 풀린다
나를 보는 눈빛과 사뭇 다른 열렬함이 느껴지는 거다
이승환과 나와 와이프는 삼각관계라는 것
이승환 빠순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승환 콘서트에 한번도 못가본 아내는
아무래도 이승환 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 이런식으로라도..)
콘서트에서 방방거리며 몇시간 뛸 자신도,
그리고 곧 임신하게 되면 콘서트 따위가 아니라 물한잔도 뜨러가기 귀찮아할게 뻔할,
그런 아내를 위해,
올초부터 하루하루 돈을 모았다.
1월에는 물론 태산이라도 쌓을 기세로 미친듯이 모았으나, 뭐 이래저래 지름신 강림으로 날려버리고
결혼기념일 선물로 구입하고야 만 이승환 콘서트 티켓
하루 늦게 구입하는 바람에 S석을 못끊고 R석에 만족했던 씁쓸함도 있긴 했으나,
크리스마스 추억은 눈오던 성균관대 앞의 풍경이 전부인 우리는,
이젠 의도하지 않으면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을 추억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루에 하나씩 늘어나는 기분인 눈가에 주름들 사이로 이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놔야 한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콘서트에 임하심에,
나는 어제 스테미너 보강을 위해 추어탕을 먹어주었고,
다른 날보다 잠자리에 일찍 들었으며,
iDaks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새양말을 꺼내 신었고,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오늘은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 졸았다.
내일 죽더라도 나는 오늘 기어이,
이승환 빠돌이가 되어 이승환 빠순이와 함께 이승환 빠부부로 날뛰리라.
# by | 2008/12/24 16:51 | 생활의 순간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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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멋지십니다~^^
그나저나 산타는 잡으셨습니까? 혹시 댁내에 강금해놓고 말이 안통해서 쥐어박고 계신건 아닌지... ㅋㅋ
산타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양말도 걸어두고 이불 덮어쓰고 매복(?)까지 하고 있었건만...
경기가 안좋아서 산타도 부잣집 애들만 챙겨주나보더라구요... 씁쓸한 크리스마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