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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위하여

다양성(多瀁性) :
[명사]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 (diversity; multiplicity) 
(네이버 사전 참조)


다양성, 요즘의 화두다.


한국의 30대 중반의 유부남에 회사원이라한다면 사실 뻔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회사-집-회사-집의 반복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어도 뻔하다. 어제본 텔레비젼 쇼프로 이야기, 스포츠, 주식, 동료 및 상사 뒷담화, 주말에 어디어디 놀러갔거나 뭐 먹은 이야기. 뻔하다. 기껏해야 자기계발 얘기 좀 나와도, 영어나 MBA 정도. 식상해서 뒈질지경이다. 직장인들이 읽는 소설들도 거의 판박이다. 비슷비슷하다는 이야기. 역사소설, 추리소설, 시시껄렁한 연애소설 같은거. 물론 반드시 베스트셀러 중심이다. 뭔가 검증 받은 것들을 구입한다는 얘기인지도... 경제이론을 들먹이며 체계적으로 정부를 욕하더라도 자 커피 다 마셨으니 이제 내려가서 일해야지~로 끝나는게 전부. 혹은 왕년에 좀 놀았거나 잘 나갔을 때의 자랑질. 그러다가 군대얘기.
이 패턴은 정말 오바이트가 쏠린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나 또한 이 패턴하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직장이란 연봉도 중요하지만 업무 성과를 내고 역량을 쌓아가며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다, 따위의 지긋지긋해져서 이젠 화가나는 '닥치고 일 열심히 하는게 좋을거다~'라는 논리! 올바른 회사관을 갖고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핵심인재일쎄, 따위의 구시대적인 그러니까 이른바, '닥치고 시키는대로 열심히 하면 이쁜 놈~'의 논리들.
지긋지긋하고 불질러버리고 싶은, 하지만 그것이 정설이 되어버렸고 공리가 되어버린데다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계.
하지만 뭐, 정작 몸은 그런 것들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열심히 일해야지, 핵심인재가 되고 싶어, 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말꺼야, 따위들. 전문직도 아니면서 평범한 회사의 평범한 Staff에 불과하면서, 전문가는 개뿔. 아무튼 뭐 궁시렁궁시렁이다.


그러다보니 위험해졌다.
나는 회사생활 하듯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국가를 바라보기를 회사를 바라보는 것 처럼 되버렸다.
아무리 더러워도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어, 월급쟁이 주제에, 남의 돈 뺏어먹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아는 그냥 애교.
아무리 더러워도 국가가 하라는 대로 해야지, 어쩌겠어. 대한민국 국민주제에, 1%에게 얹혀사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쯤 되면 어흑. 이건 좀 위험하다.


경제가 그렇고 그렇게 되어서, 나는 지금 여차저차 어쩌구 저쩌구 되어 회사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중인데,
덕분에 열심히 이글루스를 실시간으로 읽고 있었다. 하루종일 읽어도 새글이 바닥나버리는 이 시궁창 같은 현실 앞에서 절망하며,
올블로그, 다음 아고라, 디씨인사이드, 네이버 뉴스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읽으면 하루가 간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은 희망~ (우울한 희망이군)
아무튼 그렇게 읽다보니, 나는 내가 경험했거나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 이외에도 내가 모르는, 혹은 접할 수 없었던 정말 다양한 문화가 생겼거나, 있었거나, 혹은 놓쳤거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아저씨가 되어버렸던거다.


최근엔 도서밸리에서 분서사건으로 시끌시끌 하던데, 책을 불태우니 어쩌구를 떠나, 판타지나 SF, 무협 등의 소위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책을 읽어본적이 없다는 것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런 논쟁에 슬쩍 껴보고 싶기도 했지만, 즐기진 않아도 유명한거 몇개는 읽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맨날 뭔가 품격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옆구리에 끼고 다니지도 않는 허위의식은 좀 버려주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회사 동료들과 대화가 안될지도 몰라, 라는 강박관념도 좀 버려주고, 자전거 배우듯 차근차근 배워보자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옆자리 후배 사원에게 (그래도 회사 2년차면 푸릇푸릇 하지 않겠는가) 내가 뭘 읽어야 하는지 말해달라 했더니, (나름 뭐 온라인 게임도 할줄 알고 하길래) 무협밖에 모른다면서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이런 엑셀 문서로 타이핑하여 보고 하는 것이다! (훗, 회사원들이란~)


물론 장르문학 작품을 더듬거리며 읽어보고, 온라인 게임도 좀 해보고, 만화책도 좀 본다고 해서 다양성이란게 습득될리는 없다.
듣지 않던 음악의 장르를 듣고 한강에 나가 웨이크보드를 해보고 갑자기 식탐에 빠져 이 맛집 저 맛집 돌아다닌다고 해서,
혹은 DSLR 카메라를 메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현 시점에서 20대 초반에 유행하고 있는 것들을 따라 해본다고 해서, 역시 다양성이 습득되는 것은 아닐게 뻔하다.


하지만,
나는,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은 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를 알 수 없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마니아틱한 (덕후스럽다라고 하던가) 다양한 문화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좀처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우리들만의 폐쇄성들이, 신문기사 한 꼭지를 놓고 세상은 이렇고 사람들은 저러네, 하는 나의 논리를 마구 펴놓는 것은 아닐까, 철학적 사고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보지 않고 일부분 오류를 통해 그것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그런게 무섭다.
나의 논리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 하루이틀의 고민으로 내 생각을 정립해 가는 것,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어대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 다양한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너무 쉽게 당신은 틀렸다고 말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나는 나야, 그것뿐, 이라고 너무 쉽게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선은,
내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살면서 절대 경험할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상징적인 행동이 될지 모르더라도,
그러니까 나의 사랑스러운 후배 사원이 정성껏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어 보고해 준, 책들을,
읽어볼 것.


그리고나서 당신들의 '덕후스러움' 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by djccuri | 2008/11/19 17:51 | 생활의 순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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