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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경험한 이글루스, '그'를 생각함.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시끌시끌해서 다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한 모양인데 나도 그 트랜드에 일조하여 계속 피곤해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게다가 회사는 나날이 혼란과 불안 그자체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보니 우리 부서는 예산이 끊긴지 오래되서 덕분에 할일없이 빈둥거린지도 오래다. 취직을 못해서 난리가 난 세상에서 직장은 있으나 일은 없다고 고민하다는게 거의 살인행위와도 같은 말폭력일 수도 있겠지만 한 10개월쯤 이러고 살다보니 이젠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이제 그만나오라고 서너달 월급 더 주면서 짤라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악플보다는 무플이 더 잔인하다더니 위에서건 옆에서건 묵묵부답이다. 

아무튼 뭐 그런건 중요치 않고, 빈둥거리다보니 할일도 없고 그래도 회사에서 대놓고 놀기도 뭐해서 자료찾는 척 하면서 요즘은 이오공감도 다 읽고 밸리도 탐방하는 등 생전 안하던 이글루스 글읽기를 하고 있다. 이글루스에서 블로그를 하는 나는 그냥 여기는 일기를 쓰되 살짝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글들을 올리는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직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보니 다른 글들을 잘 읽지 않고 살아왔다. 하긴 뭐 내 블로그도 잘 안들어오는 내가 다른 사람 블로그에 갈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며칠간 여러 블로그들을 다니며 많은 것을 읽었고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첫 느낌은, 현재 이 시점에서 나는 적어도 이글루스에서 블로그를 하는 블로거들과 소통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것이였다. 내가 나의 세계에서만 살고 있었거나 혹은 문화적 현상들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거나 하는 것이겠지만, 중요한 건 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으며 대화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 

또한 이 세상에는 사회현상이든 문화현상이든 여러가지 현상들을 자기가 갖고 있는 깜량과 잣대를 통해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종합하여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대충 쓰는게 아니라 꼼꼼하고 성실한 글을 쓰면서도 재밌게! 그 논리가 비약일지라도, 혹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류일지라도, 과대망상일지라도, 시스템적 사고가 전무한 편협한 사고 일지라도! 의견과 주장들이 광장에 모여서 (뭐,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웅성웅성 대고 때론 싸우고 하하호호 해보고. 최선을 다해 객관과 주관을 분리해내면서 올바른 언어로 발전적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보니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러한 좋은 분위기에서도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뉴스를 바라보든 문화를 바라보든 일관된 방향이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분야를 논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미 일관된 가치체계가 있어 보인다. 정치를 논하든 남녀의 문제를 논하든 경제를 논하든 말이다. 그리고 정해진 가치체계에 벗어나는 일탈 행위를 하는 블로거가 있다면 늘 리플이 시끌시끌해진다. 뭐 대개는 리플도 점잖게 의견을 제시하고 반론을 제기하고 그렇게 주고 받는 편이지만, 가끔은 감정적으로 말꼬리 잡고 싸우는 모습도 몇번 목격했다. (겨우 딱 5일 내내 관찰한 것일 뿐이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보다 다양한 관점이 나오면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식의 범주에서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사회란, 상식의 세계에 몰상식이 침투했을 때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식의 세계를 검토해보고 검증해보는 자세를 갖는 것이라 생각된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마음을 닫고 반론하는 것은,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문구 중 하나인,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을 못할때 폭력이 발생한다. 

사실 이글루스의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가 다른 사람들과는 생각이 몹시 다른, 이글루스 내의 상식에 벗어나는 몰상식한 블로거를 발견했다. 누군지 밝히지는 않겠지만(돌아다녀 보니 나름 유명한 블로거인듯 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이 투철하고 Fact로 치부될 수 있는 근거들을 (대개 신문기사 중심이긴 했지만) 통해 논리를 만들어가는 자세도 좋았거니와 글도 자주 올리는 성실함도 있었다. 물론 논리의 비약이거나 시스템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두 정답을 추구하고 상식을 존중하는 세계에서 기발함이나 재치가 아닌 정말 '다르다'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그의 생각은 대부분 한국의 기성세대들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라 진부한 점은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에, 좀처럼 덧글같은거 달지 않다가 별 고민없이 덧글을 하나 남겼는데, 이른바, '야단' 맞았다. 그리고 당신은 세상의 노예라는 식의 쓴소리도 들었다. 뭐 사실 이미 노예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는 없지만 요새는 그 노예라는 말이 머리에서 맴돈다. 그렇다고 뭐 그 사람이 제시한 가치를 따를리는 없겠지만, (훗, 나도 나의 가치로 중무장한채로 살고 있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가치를 논한단 말이다) '노예'라는 뉘앙스가 주는 블랙유머스러운 느낌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나는 논쟁을 할 이유는 찾지도 못했기 때문에, 별 다른 말은 남기지 않았지만 서너번의 리플을 주고 받으며 때로는 기뻤고, 때로는 진지해졌으며, 때로는 그가 아깝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 정도로 자신을 표현할 힘이 있는데 왜 벌써 자신과 타협해버렸는가에 대한...) 또는 분명 시간이 지나면 날카롭고도 뛰어난 안목으로 펜을 휘날릴거라는 믿음도 들었다.

북마크를 해놓고 요즘은 매일매일 찾아가서 응원하듯 그의 글을 읽고 있는데, 여전히 그는 상식과 거리가 먼 불편한 글들을 남긴다. 부디 매장당하지 말고 편함을 추구하는 이 세계에서 불편한 존재로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조언대로,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혹은 '노예'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 우리는 비록 남녀관계에 대해 얘기했지만 나는 그것에 국한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블로그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뭐 이글루스를 생각하게 했다고 해도 괜찮고) 또 글쓰기라는 것과 삶이라는 것, 아무튼 그런 것들을 둘러싼 여러 단어들을 많이 떠올리게 해주었다.
네트워크의 세계에 약한 나는(차라리 대면하고 대화하는게 더 자연스러운) 만나서 소주라도 한잔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몰상식을 발휘할 용기가 없어서 조용히 혼자 생각만 하기로 했다.






 

 

by djccuri | 2008/11/05 15:34 | 생활의 순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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